[분업1년 결산-제약편]의약분업은 당초 국내 제약업체들에게 건국이래 최대 위기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됐다. 의약분업이 의약품의 투명한 거래를 대전제로 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품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퇴출될 수 밖에 없는 제도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그동안 품질력 보다는 할·증인 등 변칙영업을 통해 경쟁력을 지탱해온 부분이 없지 않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7개월여전에 약가거품을 대폭 제거하는 무더기 약값 인하작업에 나섰다. 지난 99년 10월말 보험약 대부분 품목의 약값이 평균 30.7% 인하됐고 곧바로 같은해 11월 15일 \'실구입가상환제\'가 전격 단행됐다. 의약분업은 이처럼 보험약에 관한한 이른바 \'유리알 유통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마진\'을 대전제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실구입가제 시행후에도 제약사들의 마진주기는 폭만 작아졌지 멈추지 않았다. 실구입가제 시행 3달여 후 의료계의 대대적인 집회가 전국을 들썩이면서 적지 않은 제약사들은 틈을 노려 요양기관에 대한 마진주기를 확대했다. 마진폭은 여전히 예전보다 줄었지만 할·증인이나 뒷거래가 서서히 확대돼 갔다. 중하위 제약사들은 최악의 위기의식을 갖고 실구입가제 시행 전보다 더 많은 백마진을 얹어주기도 했다. 의약분업의 대전제가 이처럼 흐지부지한 상황에서 의약분업이 시작됐다. 제약사들은 분업이 시작되면서 당초 우려와는 달리 큰 호황을 맞았다. 약국들이 처방약을 구비하기 위해 처방약 사재기에 나섰다. 몇몇 약국은 제약사들에게 오히려 호소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제약사들은 지난해 7월~10월 사이 너나없이 분업특수를 크게 누렸다. 제약사들은 매출 뿐만 아니라 수금도 당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재미를 봤다. 의약분업이 의-약-정의 대립과 잇따른 협상실패로 혼돈을 거듭하자 일부 중하위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한 변칙영업도 극에 달했다. 의료인들이 카피약 보다는 오리지널 약을 선호하고 나서자 카피위주의 제약사들은 생존수단으로 편법영업에 더욱 날개를 달고 뛰어 다녔다. 대표적인 편법영업은 ▲처방전을 이용한 리베이트 주기 ▲담합조장을 통한 처방약 밀어넣기 ▲보험약과 비보험약 약가차액 이용한 편법 유통 등이 주류를 이뤘다. 그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이렇다. A사는 분업이 시행되자마자 이 회사 영업사원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의원급에 처방전 1매당 1,000원씩의 리베이트를 보장해주라는 내용이다. 환자들에게 가야할 처방전 2장중 1장이 영업사원들의 리베이트 증빙용도로 편법 사용됐다. 전국적으로 상당한 리베이트가 뿌려졌고 매출이 급증했다는 것이 이 회사 모영업간부의 고백이다. B사는 분업후 A사보다 한수 위의 편법영업에 나섰다. 영업사원들로 하여금 의료기관과 약국간에 담합을 하도록 조장한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처방을 아무리 많이 유도해도 인근약국에 약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때문이었다. 이 회사의 일부 영업사원들은 의료기관 인근의 약국들에 접근, 의료기관의 처방전을 몰아줄테니 자사의 약을 구입해 줄 것을 종용했다. 영업사원들은 이에 더해 약값을 할인해 주고 덤도 많이 준다고 약속했다. 해당약국은 꿩먹고 알먹는 기분에 영업사원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B사는 이같은 변칙영업으로 상당한 매출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약사회 조직으로부터 적발돼 정부당국에 고발이 의뢰됐다. C사는 분업후 일반의약품의 매출이 떨어지자 탈출구를 모색했다. 이 회사는 보험약으로 등재된 일반의약품중 대형품목을 보유하고 있어 더 고민이 됐다. 이 회사는 동일한 약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약이면 100원에 출하하는데 반해 비보험약이면 많게는 200원까지 출하할 수 있었다. 보험약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비보험약 출하를 늘린 덕에 쏠쏠한 재미를 봤다. 약국은 의료기관에서 해당약에 대한 처방이 나올 경우 보험약이 없어 불가피하게 비싼 비보험약으로 처방해야 했다. 그리고 보험약제비 청구는 보험약으로 할 수 밖에 없어 앉아서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항이 발생했다. 이 회사는 약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으나 어찌됐든 상당한 차액을 남겼다. D사는 분업시행 직전 전국 영업사원들에게 처방의약품 \'쏟아붇기\'를 지시했다. 그 당시 의료기관 인근약국 또는 조제전문약국들은 처방약 확보에 비상이 걸려 일순간이지만 \'고객\'(약사)이 제약사에 사정하는 처지가 됐다. 이 회사는 이같은 호기를 놓치지 않고 영업사원들을 문전약국이나 조제전문약국에 집중 전진 배치해 의약품 밀어넣기를 했다. 그것도 보통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속칭 \'현찰치기\'였다. 이 회사는 더 나아가 기존에 깔려 있는 수금까지 당겨가며 의약품을 밀어넣었다. 예상을 넘는 매출폭증과 수금율 증가가 선물로 던져졌다. 그런데 11월이 되면서 밀어넣었던 약들이 재고로 쌓이면서 서서히 반품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반품을 최소화 하기 위해 다시 약국 인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처방극대화 작전에 나섰다. 의료기관에 대한 리베이트를 대폭 확대하고 재고약 처방을 유도했다. 그 결과 반품물량이 줄어 단기간이지만 현금매출도 늘리고 이익도 늘리는 재미를 봤다. 복제의약품을 많이 갖고 있는 F사는 분업후 오리지널 의약품에 밀려 매출이 줄어들 조짐을 보이자 영업사원들에게 비상조치를 내렸다. 기존 거래처를 사수하기 위해 할증(덤주기)과 할인(수금액 탕감)을 분업전 보다 더 많이 하라는 내용이다. 영업사원들은 이중장부를 들고 다니며 이전투구를 벌였다. 심지어 정상물량 보다 덤이 더 많은 경우도 있었고 수금할 액수보다 탕감액수가 더 큰 경우도 나왔다. 언뜻 보기에 이 회사는 망할 것 같았으나 오히려 매출을 유지하고 수익도 많이 남겼다. 그것은 제조원가를 철저히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회사는 당국에 고발돼 행정조치를 받았으나 이와 유사한 영업을 한 다른 회사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분업이후 일부 제약사회사들의 이같은 변칙영업 행위들은 물론 전체적인 양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업정책이 이리지리 흔들리면서 적잖은 업체들이 이전투구에 휘말린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같은 제약사들의 분업특수는 매출과 이익증대로 이어졌다. 12월결산 25개 상장제약사들의 지난해 매출실적은 전년대비 9.1% 증가한 2조5,12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증가율은 이처럼 예년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경상이익은 전년대비 220%나 증가한 1천804억원, 순이익은 384% 증가한 1,360억원 규모에 달했다. 국내 상장제약사들이 분업시행후 짭짤한 재미를 본 셈이다. 최근 결산을 한 3월결산 7개 제약사의 경영실적도 매우 좋았다. 매출은 6,566억원으로 전년대비 4.7% 증가하는선에서 머물렀으나 이익규모는 12월결산 업체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를 봤다. 경상이익은 61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11% 증가했고 순이익은 422억원으로 68% 신장했다. 외자제약사들도 매출과 이익면에서 모두 큰 수익을 내기는 마찬가지였다. 26개 주요 외자제약기업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1조3,123억원으로 전년대비 26.4% 증가, 국내 제약기업들의 매출증가세 보다 두배이상 높았다. 경상이익은 1천7억원으로 96.7%, 순이익은 693억원으로 128.4%의 증가률을 각각 시현했다. 제약업체들은 그러나 올해 들어서 분업시행 첫 해와 같은 분업특수를 기대할 수 없음을 직감해야 했다. 정부와 사정당국이 의약계 납품비리에 대해 대대적인 사정을 본격화 했을 뿐만 아니라 대폭적인 보험약가 인하가 계속됐다. 위기를 느낀 제약사들은 더 이상 편법영업이 통하지 않음을 직감하고 제품력을 갖추기 위한 작업에 발벗고 나섰다. 제약사들은 해외 라이센스 선을 찾아 신약 선진국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기존 제휴선을 강화하고 새 제휴선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제약사들은 이와함께 자사의 연구·개발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즈음 정부는 보험재정이 바닥나고 적자를 면치 못하자 요양기관들의 허위·부당청구에 대한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실사를 함께 벌였다. 제약사들은 사정당국의 의료인 수사에 휘말려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제약사는 수사대상에 오른 의료인을 끝까지 보호해 의료인들로부터 인기를 누리는 일도 발생했다. 사정당국의 타킷이 된 업체는 외자제약사로 옮겨갔다. 외자사들의 처방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둘째치고 외자사들의 접대성 간접지원이 과도하다는 사정당국의 판단에 미쳤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분업 1년을 맞아 이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사정당국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나갔고 약사법 개정안도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에서다.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제약사들은 자사 제품을 상용처방약목록에 넣기 위해 지역 의·약사회에 대한 영업을 대폭 강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제약사들은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속 낮잠을 자자 상용처방약 선정을 위한 영업에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제약사들은 또 제품력을 갖추고 생동성 등 약효동등성을 인정받는 품목을 다수 보유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초 \'약제급여·비급여목록및상한금액표\' 개정·고시를 통해 약효동등성을 확보하지 않은 186개업소 5,735품목(전문의약품 4,167개, 일반의약품 1,568개)에 대해 오는 11월부터 보험등재에서 삭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전체 보험등재 품목 2만1,000여품목의 27.3%에 해당되고 11월 이전까지 약효동등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제품은 무더기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복지부는 또 지난 5월말 보험재정안정대책 발표를 통해 \"복제 의약품의 가격산정 기준을 현행 오리지날 품목의 최고 90%에서 75% 수준으로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가 단행되면 저가경쟁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온 적지않은 카피약들이 시장에서 무더기 퇴출될 수 밖에 없다. 제약업체들의 환경은 지금 과거 1년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우수한 제품력을 갖추지 못하고 정도영업을 추구하지 못하는 제약사는 퇴출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것이 분업 1년을 맞아 제약업체들에게 다가온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